밤하늘에 별이 수놓은 듯 빛나는 어두운 교정, 거대한 사각형 건물의 창문은 아직 밝게 빛나고 있었다. 꿈 연기 학교의 신비로운 복도는 조용했지만, 한 층 깊은 곳에선 여전히 환상과 감정, 그리고 치유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대가 펼쳐지는 곳. 학생들은 단순히 연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꿈 속에 들어가 그 복잡한 감정과 환상을 몸소 연기하며 치유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교수진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교육 중 하나인 타인의 무서운 꿈을 직접 연기하며 극복하는 용기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훈련은 표면적 연기가 아니라, 꿈의 심층 구조 안으로 직접 침입해 각종 무서움과 맞서 싸우며 그 심리적 괴로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뜻한다. 학생들 모두가 이 훈련 앞에선 떨고 있었지만, 누군가 반드시 첫걸음을 내딛어야만 했다. 특히 세 번째 학년인 서현은 이 도전을 자원했다. 기묘한 감각 속에서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강의실 중앙엔 커다란 원형 무대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전신을 감싸는 보랏빛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 안개는 마법적 매개체 역할을 하여, 꿈꾸미의 기억을 불러내고 현실로 끌어오는 힘을 지녔다. 서현은 긴장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했다. 교장인 마르셀 교수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지금부터 네가 연기하게 될 무서운 꿈은 네 동급생 정민이의 그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이 꿈의 괴물에 숱한 두려움을 느껴왔지. 너는 단순히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물과 맞서 그 두려움과 공존하며 그를 대신해 극복해야 한다.”
서현의 온 몸이 따뜻하게 전율했다. 꿈의 내용은 평범하지 않았다. 깊고 무거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그림자 괴물, 변화무쌍한 위협으로 변하며 끊임없이 쫓아오는 공포. 무대 위에 펼쳐진 갑작스러운 현현은 서현의 다리가 굳어질 정도로 현실감 넘쳤다. 서현은 처음 맞닥뜨린 그림자 괴물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곳은 마치 끝이 없는 심연 같았다. 그녀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괴물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괴물의 손짓 하나 하나, 기어오는 소리와 찢어지는 숨소리까지 전부 다 표현하며, 무서움에 대한 극명한 생체 감각을 관객인 동료들에게 분출해야만 했다.
초반에는 공포심이 그녀를 압도했다. 괴물이 자신을 휘감으려 할 때마다 몸이 굳고, 자신의 한계를 뼛속 깊이 체감했다. 그러나 깊고 서서히 들려오는 마르셀 교수의 중얼거림,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안에서 굳센 빛을 찾아라”는 주문이 마음속에 깃들면서 서현의 몸과 정신은 점차 새로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녀는 괴물의 본질, 즉 정민의 무의식에서 나온 ‘두려움’의 실체를 상상하며 그것을 무조건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법을 배워갔다.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녀는 괴물을 두 가지 면으로 표현했다. 처음엔 무자비한 위협이었지만, 차츰 괴물의 존재가 정민 자신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경고이며 자기보호의 메시지임을 깨닫고, 그 안에 숨은 약하고 상처받은 영혼의 단편들을 섬세히 그려나갔다. 무대 위에서 괴물의 굵직한 외형은 점점 투명해졌으며, 그 자리에 어딘가 모르게 슬픔과 위로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현은 그 순간, 단순한 공포극을 넘어서 감정을 풀어내는 정서적 매개자로 거듭났다.
그녀의 용기 있는 모험을 눈으로 지켜보던 동료 학생들의 마음도 흔들렸다. 그들 또한 자신이 몰랐던 공포와 마주하며, 용서와 치유의 실마리를 얻는 듯했다. 연기가 단순한 폭발적인 표현이 아니라, 타인의 내면을 꿰뚫는 심리적 탐험이라는 걸 완벽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마르셀 교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오늘 훈련이야말로 꿈 연기 학교가 세상에 내놓는 가장 신비롭고 깊이 있는 가르침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현은 달빛에 빛나는 고요한 숲을 배경으로 괴물과 마주하며 눈물 어린 대화를 주고받았다. 괴물은 더 이상 두려움의 상징이 아니라, 그녀 자신과 정민 모두를 보호하는 존재로 승화되었다. 그녀는 두려움 너머의 진실된 감정을 열어 보이며, 연기와 치유가 맞닿는 경이에 다가갔다. 무대가 완전히 잠기기 전, 어떤 후미진 곳에서 은은한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 속삭임에는 미처 풀리지 않은 또 다른 꿈의 타래가 있었다. 그렇게 서현의 도전과 용기는 마치 완결된 듯 보이면서도, 새로운 여정의 문을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앞으로 누군가의 낯선 꿈속 어둠과 만날 때,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마르셀 교수의 목소리가 훈련장 천장에 울림을 남기며, 모두의 가슴속 심연에 깊은 파문을 남겼다. 서현과 친구들은 어둠 속 빛을 찾아가는 모험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약속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