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럽게 감싸 안은 달빛이 깊은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희미한 빛줄기는 마치 하늘과 땅, 그 경계의 모호한 공간을 연극 무대처럼 밝히고 있었다. 그곳, 꿈 연기 학교 ‘인피니토 무대’의 심화 실습실, 학생들은 오늘도 자기의 한계를 시험하는 실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학교 내부에선 누구도 흔히 경험할 수 없는 마법, 타인의 꿈을 현실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꿈 연기’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저 단순한 연기가 아닌, 잠재된 감정과 상념의 진폭을 그대로 끌어내어 무대에서 구현하는 이 기술은 마법적인 동시에 심리적으로도 가장 위험한 예술 행위로 여겨졌다.
가장 핵심적이고도 까다로운 숙제는 ‘감정 균형 유지’였다. 꿈의 본질은 흐릿하고, 막연하며, 그 속에 담긴 인물들의 감정 또한 비정형적이어서 연기자는 자칫 그것에 휘말려 정신적, 감정적으로 무너지기 십상이었다. ‘인피니토 무대’의 수석 교사이자 윤리학과 정신 균형론 전공자인 선생님, 주혁 선생은 이 문제를 마법과 심리학을 접목한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갔다. 그의 훈련법은 ‘감정 분리 자동화’라고 명명되었다. 이는 연기자가 꿈 속 감정에 몰입하면서도 그 감정을 자신의 자아와 엄격히 분리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 마법적 명상법과 신경조절 훈련을 포함했다.
그날 실습실에는 학생 열두 명이 모여 있었다. 각자 거울처럼 반사되는 눈빛으로 주혁 선생의 말에 집중했다. “감정을 껴안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에 잠식되어서는 안 된다. 꿈 속 감정은 당신의 것이 아니기에, 완전한 동화는 자칫 자기파괴로 이어진다. 우리는 감정을 한 몸에 끌어안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상 속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주혁은 지팡이를 살짝 들어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은 학생들의 앞에 투명한 환상 구체로 떠올랐다. 그는 그 안으로 함께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이 공간을 ‘감정 분리의 원형’이라 부른다. 이 안에서는 당신의 마음과 꿈 감정이 나뉜다. 명확한 경계가 있으며, 상호작용은 하지만 섞이지는 않는다.” 학생들은 그 말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꿈 속 감정은 찰나의 이입도 관건인데, 그것과 거리 두기라니 본능적으로 모순된 행위였다. 그러나 주혁 선생은 “우리는 이 훈련으로 자신을 지키고, 꿈 속 타인의 상처까지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레이닝은 네 단계로 구성됐다. 첫째, ‘감정 매핑’이 있었다. 마법진 안에서 학생들은 각자 손으로 느껴지는 감정의 그림자를 시각적 기호로 환원했다. 불안은 미묘한 파란 빛, 억울함은 뭉근한 붉은 가닥, 연민은 투명한 노란 구름 형태였다. 주혁 선생은 “표준화된 심상 체계가 있어야 감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차별 명상’이다. 학생들은 눈을 감고 느껴지는 감정을 한 발 떨어져서 조용히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그 과정은 가혹했다. 감정은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었지만, 머리는 계속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는 훈련은 심초월적 집중력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주혁은 부드러운 어조로 “너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연기자의 첫 번째 의무”라고 상기시켰다.
셋째는 ‘신경조절 마법’ 단계였다. 마법적 신경 자극을 통해 리비도와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조율하는 방법이었다. 주혁 선생은 특별히 고안한 ‘염화 마나 촉진기’를 꺼내, 학생들의 뒤통수와 심장 부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따스하면서도 미세한 진동이 퍼져나가면서, 학생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차분함을 끌어냈다. “마법은 감정 조율의 도구지, 당신의 의지를 대체할 순 없다.” 일상의 신경과 몸의 연계를 강화하는 이 동작 덕에 학생들은 꿈에 잠입하면서도 ‘스스로 침몰하지 않는’ 획기적인 감각을 몸에 익히기 시작했다.
마지막 단계는 ‘역동적 꿈 연기’였다. 학생들 각자는 무대 중앙으로 나와 타인 꿈 속 한 장면을 즉흥 연기했다. 이번 과제는 ‘최대 감정밀도와 최소 자기 소실’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이었다. 학생 지민이 첫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 친구의 부재와 상실감을 꿈 무대 위에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곧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표정은 흐려졌다. “지민아, 호흡을 세 번 크게 들이마시고, 다시 네 안의 공간으로 돌아와. 꿈 속 감정과 네 자아가 만나는 문을 활짝 열되, 네 중심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주혁 선생의 안내에 따라 지민은 다시 침착함을 찾았다. 그 모습에 주변 학생들도 조용히 숨죽이며 집중했다.
마법의 힘이 깃든 무대 조명이 지민의 연기하는 모습을 감싸 안았다. 꿈의 풍경이 환하게 펼쳐졌고,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연극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나 지민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고 진정했다. 마치 두 세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듯했다. 연기가 끝난 뒤, 선생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정의 파도를 타면서도, 그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조련, 그것이 진정한 꿈 연기자다.”
연습이 모두 끝난 후, 학생들은 각자의 감정을 돌아보며 소감을 나눴다. 한 학생은 “감정을 분리한다는 건 상상만큼 쉽지 않지만, 오늘 처음으로 내가 감정에 침잠되지 않고 무대를 설 수 있어서 놀라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마법과 명상이 결합된 이 훈련법이 우리를 보호해준다. 혹시 실패해도,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혁 선생은 수업을 마무리하면서도 장담하지 않았다. “이 훈련법은 완전치 않다. 여기서 배운 균형은 매번 무대 위에서 다시 시험받기 때문이다. 더불어, 꿈 연기의 신비는 감정이 때로 자유롭게 넘실대야 완성되기도 한다. 내일, 우리는 ‘감정의 역습’이라 불리는 고난도의 실습에 도전할 것이다.” 선생의 마지막 말이 실습실에 무거운 긴장감을 드리웠다.
문득, 창밖에서 불현듯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갔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다른 차원의 방문자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번 훈련에서 배운 균형조차 깨뜨릴, 새로운 판타지적 극한 상황이 선생과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꿈과 현실, 상상과 기억, 감정과 자아 사이 경계에서 그들은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스스로를 지키면서 타인의 고통까지 연기해야 하는 이 무한한 무대 위에서, 오늘의 훈련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