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가 저물 무렵, 스산한 안개가 학교 주변을 감싸 안으며 ‘꿈 연기 학교’의 고요한 밤을 물들였다. 마법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이 특이한 공간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의 주제는 무겁고도 감동적인 것이었다. ‘악몽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승화시키는 수업.’ 유형과 감정의 불안정함 속에 숨어 있는 어둠을 직면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예술과 마법을 결합해 치유와 공감의 순간으로 재창조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꿈을 다루는 연기자에게 있어 가장 심오하고도 도전적인 과정이었다.
교실은 대나무 벽지 대신 투명한 꿈의 안개로 만들어졌고, 중앙에는 둥근 연무 장치가 빛나는 무대가 있었다. 그 무대 위에 선생님, 설아는 천천히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설아 선생님은 수십 년간 꿈꾼 자들의 기억 한 칸 한 칸을 파고들며 연기와 치유를 연결짓는 마법 연극의 대가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우리는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악몽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마주할 용기도 필요합니다. 오늘 수업은 그 용기를 연습하는 자리이며, 악몽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감정의 진실을 발굴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긴장한 얼굴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이들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이들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그 꿈을 자신만의 몸과 마음으로 재현할 수 있는 꿈 연기자였다. 악몽은 감정을 왜곡하고 확대재생산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무작정 표현하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감정이 지나치게 강렬해 잘못 사용하면 연기자의 정신과 현실 감각을 크게 해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도망친다면 영혼의 깊은 눈물과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설아 선생님의 수업은, 이 두려움을 마주해 미지의 내면을 예술적으로 탐험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첫 번째 과제는 학생들의 악몽 중 하나를 무대 위에 올려 현실처럼 재현하는 것이었다. 각자는 자신 혹은 타인의 꿈을 선정해 그 독특한 상징, 심리적 요소들을 끌어내야 했다. 선착장 근처에 서걱거리는 철로가 끝없이 이어지는 꿈, 온몸이 무거워 숨쉬기가 힘든 어둠 속에서 괴물에게 쫓기는 꿈, 가족과의 갈등 끝에 말하지 못한 진실이 흉터처럼 남은 무대, 각자 가진 악몽의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그것은 전부 ‘해결되지 않은 두려움의 기억’이라는 점이었다.
한 학생, 다온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그녀의 악몽은 ‘끝없이 되풀이되는 절벽과 추락’이었다. 이 꿈속에서 다온은 늘 무언가를 잃어버렸고, 잡으려 할수록 손아귀에서 놓쳐버리는 상실감에 갇혔다. 설아 선생님은 다온 곁에 다가가 말했다. “다온아, 기억하렴. 네가 표현하는 건 너 자신의 고통일 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들의 감정을 공감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야 해. 두려움을 두려움으로만 묘사하는 게 아니라, 그것 너머의 희망과 이해를 찾아야 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단순한 연극이 아님을 체감했다. 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감정에 접촉하는 일이었다. 각자의 악몽은 개인적 심리학, 즉 무의식 깊숙한 곳에 봉인된 기억과 감정, 때로는 사회적 상처와도 맞닿아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이를 마법처럼 현실적으로 펼쳐 내는 능력이 요구되었고, 이는 거듭된 훈련과 내면 치유로만 가능했다. 설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마법뿐만 아니라 심리학, 신화학, 인간행동학 등을 가르쳤다. 그 모든 것이 혼합되어 이 독특한 ‘연기 의식’을 완성했다.
밤이 깊어지며 각 학생들은 악몽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다온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가 무대에 오르자, 안개 속에서 절벽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무대 조명이 낮은 굴절광과 파동처럼 흔들렸고, 그녀는 그 위를 맨몸으로 움직였다. 관객인 동료 학생들은 숨죽이고 숨을 고르며 그녀의 몸짓과 표정을 탐색했다. 다온은 떨어지는 듯한 몸짓을 반복하는 동안 마치 실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온몸에 떨림이 전해졌고, 그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중간중간 그녀의 목소리는 무너진 내면의 슬픔, 그러나 결국에는 그 두려움에서 발을 떼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공연이 끝나자 교실은 잠시 말을 잊었다. 악몽이란 단지 무서운 그림자가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마음의 메시지를 풀어내는 열쇠임을 모두가 느낀 순간이었다. 설아 선생님은 가만히 일어나 거친 숨을 가다듬는 다온에게 다가갔다. “맞아. 바로 그거야. 두려움은 우리가 피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성장할 기회야. 네가 방금 무대 위에서 보여준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닿는 공감의 한 줄기란다.”
수업이 거의 끝나가자 마지막으로 설아 선생님은 큰 주문을 걸었다. 교실 전체를 은은한 푸른빛이 감싸더니, 눈앞에 환상처럼 희미하게 각 학생들의 악몽이 한데 어우러져 환영으로 펼쳐졌다. 다양한 그림자와 빛, 공간 뒤틀림과 감정의 모자이크가 실시간으로 춤추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 슬픔, 분노, 상실의 파편들이 춤추었고, 동시에 치유와 해방의 빛도 서서히 퍼져나갔다.
“여러분, 꿈에 숨겨진 악몽이란 우리가 두려워하는 마음의 어두움 일 뿐 아니라, 결국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하게 하는 예술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연기로 그것을 재현할 때, 우리는 단지 타인의 꿈을 연기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내면까지 관통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힘, 이 마법, 그것이 바로 우리 ‘꿈 연기 학교’가 여러분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학생들의 얼굴에 감사와 감동이 서렸다. 그 순간, 교실 한켠에서 묘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가 미묘하게 떨리더니 찬란한 빛을 내며 점점 커졌고, 그 안에서 희미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것은 단지 이번 학기의 수업이 준 아련한 여운이 아니다. 앞으로 그들에게 기다릴, 더욱 깊고 복잡한 꿈의 미로와 그 너머에 숨겨진 신비로운 도전의 서막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