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점차 깊고 어둡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학교 강당의 내부는 은은한 은빛 조명으로 감싸졌다. 이곳은 꿈 연기 학교의 핵심 연습실, 마법의 무대이자 내면의 감정을 풀어놓는 공간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연기할 악몽의 순간을 떠올리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인 리안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내며, 이날의 수업 주제를 공지했다. “오늘은 악몽을 연기하는 수업입니다.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진심으로 무대 위에 올려보도록 하세요.”
무대에 선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나는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평소 늘 긴장된 악몽을 떠올리면, 낡고 서늘한 도시 속에서 혼자 헤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악몽의 끝은 언제나 무력함과 두려움이었다. 오늘은 그 악몽을 연기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안 깊숙이 자리한 감정을 바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익숙하고도 서먹한 두려움 속에 섞인, 미묘한 감정을 의식적으로 끌어내기 시작하자, 어느새 나는 무언가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용서’.
처음엔 어색하고 이질적이었지만, 곧 그 감정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겹겹이 쌓인 상처와 분노, 원망의 감정들을 차근차근 접어두고 떠올리며, 나는 잊고 있었던 어떤 기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건 과거, 한때 서로 믿었던 친구와의 일이었다. 나는 그 친구와의 오해와 갈등으로 인해 점점 멀어졌고, 결국 솔직히 말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흘러보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악몽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된 치유와 성찰의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용서라는 감정을 품고, 그것을 무대 위에 펼쳐내기로 결심했다.
무대 위에서의 나는, 어둑한 도시골목 한쪽에 선 채, 그림자가 드리운 벽과 움직이지 않는 인물들 속에서 서 있었다. 그 풍경은 차갑고 적막했으며, 마치 시간마저 멈춘 듯 정적이 지배했다. 나는 천천히 내 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잊혀졌던 감정을 하나씩 호출하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용서의 말을 실감나게 전하려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미안해.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랐어. 그동안 미안했어.” 말하는 순간, 그 말에 담긴 온전한 진심이 내 가슴을 찢었다. 내가 그를 미워했던 감정을 넘어,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내 안에 맺힌 상처와 분노의 감정을 천천히 녹여내고, 너그러워지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용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잊거나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건전한 수용과 치유의 과정임을. 내가 말을 마치자, 앞에 있던 무대는 점차 밝아지고, 내 눈앞에 그 친구와의 모습이 녹아내리듯 흐릿하게 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뚜렷한 느낌과 함께, 참다운 용서를 느꼈다. 그것은 감히 말할 수 없는 평화, 따뜻함, 그리고 자유로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감정이 내 연기와 존재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날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인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잘했어요. 여러분 각자가 겪은 악몽의 끝에는, 자신을 위한 용서와 치유가 숨어 있습니다. 이번 경험이, 앞으로 여러분이 타인의 꿈을 대신 연기하며 느끼는 공감과 이해에 큰 힘이 되리라 믿어요.”라는 말과 함께, 차분한 목소리 속에선 따스한 빛이 흘러나왔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잠시 강당에 홀로 남아, 떠오른 감정을 곱씹으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악몽도 결국은 자신을 치유하는 하나의 길이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용서라는 마법은 그 길의 핵심임을, 나는 새삼 느끼게 됐다. 앞으로의 길이 여전히 험난할지라도, 나는 이제 더 강인하게, 더 따뜻하게,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힘으로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