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낮, 창문을 통해 부드러운 햇살이 희미하게 교실 천장에 내려앉았다. 꿈 연기 학교의 거대한 홀 안, 마법의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듯한 정적 속에서 나바 선생님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의 수업은 평상시와 달랐다. 단순히 연기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꿈을 공유하며 그 마음의 깊이를 함께 탐구하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마법의 무대 위에서 개개인의 무의식을 연기함으로써, 학생들은 단지 자신만의 상상을 넘어서 타인의 내면 풍경에 동화되는 연기자가 되기를 배워왔다. ‘타인의 꿈을 몸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일은 그저 환상이 아닌 복합적인 감정과 기억, 그리고 숨겨진 상처를 아우르는 치유적 예술 행위였다.
“오늘 우리는 서로의 가장 깊은 꿈을 무대 위에서 펼쳐볼 겁니다. 연기자는 단순히 대사를 읊는 존재가 아니에요. 오히려 당신이 아닌 누군가의 감정, 기억, 심지어 두려움까지 짊어질 때 진짜 연기의 마법이 시작됩니다.” 나바 선생님의 말에 모두가 가만히 숨죽였다. 수업실 벽에 걸린 고대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율율이 내리마치듯 공간을 감쌌다. 학생들은 각자의 특별한 ‘꿈 카드’를 손에 들고 차례로 자신의 꿈을 공유했다. 꿈 카드는 이곳에서 꿈의 정수를 담는 마법의 물건, 각자의 잠재의식이 응축된 조각이었다.
먼저, 수줍은 눈빛의 현우가 작은 손으로 꿈 카드를 펼쳤다. 그의 꿈은 오래된 숲 속, 안개 낀 호수 위에 떠있는 작고 낡은 배였다. 그 배 위엔 아무도 없었고, 바람은 조용히 물살을 가르며 마치 그만 여기가 기억의 경계선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마법처럼 공간을 감돌았다. “나는 이 꿈에서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어요. 이 호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평화와 안정, 그리고 미지의 희망을 상징했어요. 나는 그 배를 조용히 타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학생들은 차례로 각자의 꿈을 내보였다. 누구는 거대한 도시 속 잃어버린 시간의 퍼즐을 맞추려했고, 또 누구는 무한히 펼쳐지는 그림자 미궁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았다. 각 꿈은 너무도 다르고, 너무도 황홀했다. 이 과정은 단지 연기를 위한 소재 제시가 아니었다. 기묘한 꿈의 구조와 아이들이 품은 상처, 그 안에서 꿈틀대는 희망과 좌절이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치유의 날갯짓이었다.
본격적인 연기 시작을 알리는 주문이 나가자, 수업실 중심 무대가 부드럽게 빛나며 열렸다. 마치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듯, 학생들 각각은 서로의 꿈 속 세계로 스며들어갔다. 미나가 현우의 호숫가 배에 올라 동작을 시작했다. 그녀의 몸짓은 무척 섬세하고 고요했으며, 작은 떨림 하나까지도 느껴질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투명한 물결 속에서 귓가에 잔잔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배에 타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냐, 그것은 자아의 가장 깊은 바다를 탐험하는 행위’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살아 움직였다.
꿈 속 무대에서는 현우의 감정이 마치 바람 따라 춤추듯 미나의 연기에 살아 숨 쉬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나무 막대를 조작해 배를 저을 때마다, 관객들이 된 학생들 또한 미세한 떨림에 동참하며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이내 현우가 미나의 연기에 사뿐히 올라타,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던 ‘외롭지 않은 고요’는 단순한 고독이 아니라 어떤 보살핌과 위로를 기다리는 마음임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은 정우의 꿈이었다. 정우는 꿈에서 거대한 도서관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여기의 책들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환상적으로 뒤섞인 마법의 결정을 품고 있었다. “내 꿈은 내가 잃어버린 시간들, 그리고 그 속에 묻힌 기억들을 찾는 여정입니다.” 정우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수업실의 공기는 갑자기 쏘아올린 별처럼 환히 반짝였다. 그가 선포하자, 수업실 무대에 무수히 많은 책장이 생기고 사방에서 흩어진 페이지들이 춤을 췄다.
은빛 빛깔의 빛들이 책 위에서 번쩍이며 정우의 꿈이 재현됐다. 후희가 정우의 연기를 맡아, 잃어버린 기억과 마주하는 복잡한 심경을 몸짓으로 표현했다. 이 순간, 꿈은 단지 혼돈스러운 이미지가 아니라 의미 깊은 메시지를 품은 고고학적 유산이 되었다. 마음 깊은 곳에 묻힌 두려움과 희망, 절망과 열망이 서로 얽히고설킨 꿈의 실타래가 황홀하게 무대 위를 물들였다. 후희의 신체 언어와 표정에서, 꿈의 기억들이 살아나는 순간 모두의 가슴이 무겁게 울렸다.
그렇게 차례로 학생들은 서로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었고, 무대는 사계절을 넘나드는 감정의 변주곡이 되었다. 치유와 깨달음은 마법사의 주문처럼 평범한 연기에 녹아들었다. 꿈 연기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정한 마법은 바로 이 ‘공감과 치유의 예술’이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타인의 꿈을 연기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씩 더 다가섰다. 꿈 연기란 결국 마음의 언어를 나누는 일이었고, 그 안에서 숨겨진 감정과 이야기는 때로 말로 다 표현 못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중, 나바 선생님은 한 시점에서 갑자기 수업을 멈추고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그동안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낡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하얀 먼지가 소복이 쌓인 그 상자는 학교 설립 초기부터 간직해온 ‘잊힌 꿈’들이 담긴 봉인된 보관함이었다. “오늘은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니, 다음에는 이 ‘잊힌 꿈’ 중 한 가지를 함께 연기해보겠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숨소리가 일제히 가빠졌다. 학생들은 아직 마법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듯,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 날아다니는 느낌에 잠시 멍해졌다.
누구도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 보관함 속에는 지금껏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은 복잡하고 어두운 꿈들이 감춰져 있었다. 희미한 빛이 보관함 주변을 감싸며,마치 이 학교의 비밀문이 천천히 열릴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서로의 꿈을 연기하며 이미 한 차례 감정의 심연을 탐험한 이 학생들이, 이제 그 ‘잊힌 꿈’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다음 수업이 시작되는 날, 어떤 마법과 웃음, 눈물이 그 무대 위를 뒤덮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