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처음 만난 수업의 문턱에서, 이끌림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이 학교는 평범한 예술 학교와는 다르게, 꿈의 세계를 무대삼아 펼치는 고유한 실험장이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마법적 재능과 독특한 인지능력을 겸비한 연기자들이었으며, 학생들은 세상에 하나뿐인 꿈의 연기자로 성장하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내가 아닌 타인의 꿈을 대신 연기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를 통해 깊은 공감 능력을 기르고, 또 다른 이는 상상력의 경계를 넘어서는 창의적 표현을 배우는 것.
수업이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조용한 강의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마법과 예술의 접점에 선 신비로운 장소로, 깜빡이는 은은한 빛과 은색의 문양이 새겨진 벽이 특징이었다. 오늘의 첫 과제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나 아닌 내가 울고 있었다’라는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차례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내면의 감정과 접촉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타인의 감정을 어루만지고, 그것을 무대에서 마법처럼 재현하는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였다.
나는 앉아서 숨을 깊이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한 사람의 눈물 어린 얼굴, 그리고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이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속 어딘가에 깃든 사연이었음을 느꼈다. 잠시 후, 눈앞에 떠오른 감정은 차가운 슬픔이었다. 뭔가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 같은, 깊은 비릿한 감정이 손끝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그것을 무대 위의 그림자로 표출하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나 자신’이 아닌 ‘상상 속 인물’의 감정으로 재현하는 것에 있었다. 감정을 깊이 몰입하는 동안, 갑작스럽게 나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선생님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마음속 깊은 곳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용기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감정을 내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이란 걸 기억하세요. 이 연습의 핵심은 당신이 아닌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 그 감정을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에요. 지금 느낀 눈물은 당신의 슬픔이 아니라, 그 인물의 슬픔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단호했고, 그 말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적잖은 울림을 남겼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또 다른 상상 속 인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인물의 눈물이 왜, 어떤 이유로 흐르고 있었을까를 묵직하게 곱씹으며, 내 몸의 감각과 연결했다. 그 과정은 마치 오래된 다리를 건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눈앞에 떠오른 그림은 더 선명해졌고, 감정은 더 자연스럽게 넘실댔다.
이날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학생들은 자신만의 ‘타인의 꿈’을 연기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표정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 집중했고, 또 다른 이들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내면의 힘을 기르기 위해 명상과 몰입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나는 특히,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며, 그가 가리키는 감정의 섬세함과 마법적 연기 기술에 감탄했다. 이 학교의 특별함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눈앞의 무대와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마음속의 세계와 대면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 개개인마다 자신만의 창조적 연기력과 공감 능력을 체득해 가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수업을 마치며, 모두에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준비를 당부했다. “오늘은 내면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발견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내일은 그 감정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치유하고 변화시킬지에 관한 훈련을 할 겁니다.” 그의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나는 꿈속에서도 이 학교의 교실에 있었다. 꿈의 무대는 현실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섬세하게 다듬어졌으며, 우리가 연기하는 감정들은 마법의 힘으로 재현되어 빛과 소리, 냄새를 품고 있었다. 그 꿈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났고, 그 나의 모습은 마치 울면서 웃고 있었다. 그 ‘나’는 슬픔과 동시에 희망의 눈빛을 띠고 있었으며, 나는 그가 울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한 동시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을 연기하는 것의 힘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타인의 깊은 이야기를, 그 눈물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무대 위에서 그 감정을 온전히 표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겠구나.” 아침이 되어 깨어난 나는, 이번 수업에서 느꼈던 감정과 꿈속의 기억들이 내 마음에 강한 울림으로 자리 잡았음을 느끼며, 앞으로의 연습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품었다. 이 작은 시작이, 언젠가 큰 변화의 씨앗이 될 것임을 믿으며, 나는 다시 그 마법 학교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